1. 성령의 세례
(행 1:1-5)          


데오필로와 누가
사도행전과 누가복음의 저자와 수신자가 동일하다는 사실을 본문 자체가 증언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신약학자들도 인정하고 있다. 다만 여기서 우리가 약간의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수신자인 데오필로와 저자인 누가라는 인물의 역사성이다.
우선 우리는 데오필로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정확하게 아는 바가 없다. 누가가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여는말’에서 데오필로를 거명했다는 사실이 그 인물의 역사성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이 로마 정부를 향한 기독교의 변증적 성격이 강하다는 사실을 전제한다면 로마의 고위 공직자로 추정될 수 있는 어떤 사람의 이름을 빌려 쓸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 당시에 일반적 저술 활동과 연관된 관행으로 미루어볼 때 데오필로라는 누가의 저술활동을 재정적으로 지원한 인물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독자는 데오필로라는 한 개인이라기보다는 로마의 문화적, 정치적 환경 안에서 살아가던 일반 대중이라고 보아야 한다.
2세기 후반에 기록된 이레네우스의 전승에 의하면 사도행전의 저자는 ‘사랑받던 의사 누가’이기는 하지만 그 누가가 곧 바울의 주치의로서 동행한 누가였는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헨헨(D. Ernst Haenchen)의 설명에 따르면 원래의 바울과 사도행전에 묘사된 바울 사이에는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고 한다. 로마서에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듯이 바울은 율법을 긍정하면서 동시에 부정하는 변증법적 입장을 보이고 있는데 반해서 사도행전의 율법이해는 그런 역동성이 사라진다. 그 대신 사도행전은 바울을 미화하는 경향이 보인다. 무엇보다도 바울이 기적과 표징의 능력을 가진 인물로 등장할 뿐만 아니라 원래는 어눌한 사람(고후 10:10)이었는데도 대단한 연설가로 그려진다. 그 이외의 몇 가지 단서를 통해서 헨헨은 이 문제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사도행전의 저자는 바울의 동역자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후세대에, 대략 기원후 120-150년에 살았던 사람으로서 자신이 직접 경험하지 못한 사도시대의 일들을 몇몇 자료를 토대로 해서 재구성한 것이다. 특히 로마 정권을 향해서 기독교를 변호하려고 상당한 노력을 기우였다. 그래서 사도행전에 나타난 바울은 원래의 바울이라기보다는 후대의 저자가 기대한 모습으로 묘사된 것이다. 예컨대 해방 이후 남북통일을 위해서 매진하다가 암살 당한 김구를 어떤 사명감에 도취된 오늘의 젊은 역사학도가 묘사하다보면 사실과 약간 다르게 표현하게되는 것과 같다. 따라서 우리가 사도행전을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바울의 사상을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그의 서신과의 연관성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역사가로서의 누가
누가는 자신이 먼저 쓴 책인 누가복음에 들어있는 내용을 간략하게 설명한다. 예수님 당신 자신이 직접 뽑으신 사도들에게 ‘성령’의 힘으로 여러 지시를 내리시고 승천하는 그 날까지의 일을 ‘낱낱이’ 기록했다고 말이다. 예수의 생존 시대와 사도시대를 거쳐 이제 사도 이후의 시대를 살고있는 누가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통해서 기독교의 대서사를 기록한 역사가였다고 볼 수 있다. 누가는 어떤 역사관에 의해서 이 사도행전을 기록하고 있는 것일까?
사도행전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하나의 관점은 ‘율법으로부터 자유로운 이방선교’ 문제였다. 사도행전이 저술되던 시기는 기독교가 이미 유대교로부터 독립되어 있었기 때문에 율법 문제가 해결된 상태이기는 했지만 그런 결과에 이르게 된 과정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이런 과정을 정확하게 분석함으로써 기독교의 이방 선교의 당위성을 확보하고 로마정부와의 관계를 개척해나가야만 했다. 역사를 해석하는 누가가 여기서 풀어야할 문제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이다. 하나는 유대교의 율법을 거부함으로써 유대교로부터 독립하게 된 기독교가 과연 구약의 구원사와 단절된 것인가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유대교와의 분리로 인해서 로마 제국 안에서 유대교가 누렸던 종교적 자유를 유지하기 힘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누가는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에 의해서 이방 선교가 진행된 것이었지 기독교가 일부러 유대교를 배척한 게 아니라는 점에서 구원사의 연속성을 부각시켰다. 사도행전의 역사를 예루살렘에서 시작하고 있으며, 바울도 회심 전이나 후나 변함 없이 바리새파 사람이라는 생각을 갖고 살았다는 점이 강조되고 있다. 로마 정부와 기독교의 관계는 사도행전 곳곳에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듯이 매우 원만하게 진행되었다.
우리가 사도행전을 읽을 때 기독교가 아주 자연스럽게 확장된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다마스커스, 안디옥, 에베소, 그리고 로마에 설립된 교회들은 익명의 기독교인들에 의해서 세워졌으며, 사도행전에 기록된 선교는 그 중의 매우 단편적인 것에 불과했다. 이런 과정 속에서 누가는 명확한 역사관에 근거해서 사도 시대의 선교 역사를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부활 후 사십일
누가는 예수님이 돌아가신 뒤에 다시 살아나셔서 사십 일 동안 사도들에게 자주 나타나셨다는 말로서 사도행전과 누가복음의 연속성을 내보이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40일이라는 숫자는 어떤 역사적 증거를 갖는다기보다는 사도행전 2장의 성령 강림사건을 미리 암시하고 있는 것 같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이 유월절 기간 중에 있었으니까 오순절과는 50일의 차이가 난다. 승천 이후의 간격을 감안한다면 부활 이후 현현 기간이 40이라는 것은 자연스러운 계산이다. 다른 한편으로 누가는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기 직전에 광야에서 금식하고 시험받던 40일을 염두에 두고 이런 숫자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 40일 동안 예수님은 사도들에게 자주 나타나서 당신 자신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하나님 나라에 관한 말씀을 들려 주셨다고 한다. 부활 이전의 역사적 예수님과 부활 이후의 예수님 사이에 일어난 사건은 무엇인가? 단순히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말로 넘어갈 수는 없지 않을까? 여기에 우리 기독교의 딜레마가 놓여 있다. 우리의 언어로 완전하게 해명할 수 없지만 반드시 명확하게 규명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될 사건이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영원한 화두인 예수님의 부활, 그리고 40일 동안의 현현, 이어서 승천에 이르는 일련의 사건에 대한 태도에 따라서 기독교 신앙의 유형이 달라질 것이다.
어떤 기독교인들은 그것은 믿음의 대상이지 인식의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반대의 태도를 보이는 기독교인들은 이 부활을 기독교 신앙에서 제거시키려 한다. 이 두 종류의 신앙이 극과 극의 형태같이 보이지만 부활 사건을 인식의 차원이 아니라 믿음의 차원으로 국한시킨다는 차원에서는 똑같다. 다만 한쪽은 인식보다는 믿음의 세계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믿음의 범주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며, 다른 한쪽은 믿음보다 인식의 세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부활을 제거하려는 것뿐이다. 이런 방식으로 예수님의 부활 사건이 우리 모두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계시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면 괜찮겠지만 그렇지 않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전자의 방식으로는 기독교 신앙이 미몽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며, 후자의 방식으로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놓쳐버릴 것이다. 그렇다면 이 두 가지 극단을 극복하고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게 경험되었던 부활한 예수의 현현과 오늘의 합리주의적 인식론이 결합될 수 있는 제 삼의 길이 있는가?
기독교인들은 궁극적인 질문을 너무 쉬운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유혹에 빠지는 일이 많다. 일종의 신앙 편이주의라고 할 수 있는 이런 태도로 인해서 기독교 신앙이 우스꽝스럽게 보인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기독교 신앙이 고담준론(高談峻論)에 사로잡혀서 현학적이어야만 한다는 뜻도 아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무조건적인 믿음의 영역에 몰아넣지도 말 것이며, 그렇다고 해서 학문적 논리 체계에 한정시키지도 말아야한다. 이 말은 곧 스스로 우리에게 자신을 알리시는 하나님의 계시에 우리의 마음을 열어놓고 부활 사건이 확연하게 인식될 때까지 최선을 다 기울이는 길 밖에는 없다는 것이다. 하이데거의 표현을 빌린다면 존재가 자신을 드러내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도록 우리의 지성적, 영적 감수성을 예민하게 작동시키고 있어야 할 것이다.

성령의 세례
누가에 의하면 예수님은 40일 동안 현현 기간 중에 사도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셨다. 그 약속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받게 될 것이다”였다(5절). 복음서에는 이미 예수님이 성령으로 세례를 베풀 것이라고 진술되어 있는데 반해서 사도행전에서는 이 성령의 세례가 오순절 사건으로 연기되고 있다. 이런 시간적인 차이를 우리가 완벽한 계산으로 처리할 수는 없다. 그것보다는 오순절의 성령 세례가 바로 예수에 의해서 발현된 사건으로 이해하는 게 옳을 것이다. 즉 성령의 일이 바로 예수의 일이며, 예수의 일이 곧 성령의 일인 셈이다.
과연 성령의 세례는 무엇일까? 교회에서 세례를 받기 위해서 ‘문답’을 할 때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체험이 있는가, 하는 점을 우선 질문하고, 이어서 앞으로 성령 충만의 경험이 있을 것으로 믿는가 하는 점도 질문한다. 대개의 세례자들은 성령의 세례, 성령의 충만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지도 못하고 세례를 받는다. 우선 물의 세례와 성령의 세례가 근본적으로는 다른 게 아니라는 점을 전제해야만 한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행위가 성령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세례를 받는다는 말은 곧 성령의 사건이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세례를 받는 즉시 신앙의 깊이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치열한 신앙 훈련을 통해서 성령에 충만한 사람이 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다만 성령을 양적인 차이로 구분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면 좀 곤란하다. 우리의 신앙적 태도에서는 그런 차이가 보이기는 하지만 존재론적으로는 아무런 차이가 있을 수 없다. 구원이라는 것이 전인적인 것이지 우리 삶의 일부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성령에 대해서 설명하기는 간단하지 않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동양사상에서 말하는 ‘기’나 ‘도’의 개념과 비슷하게 생각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기와 도가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 개념처럼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존재 능력이듯이 성령은 ‘생명의 영’이라는 말이다. 그 생명의 영을 삼위일체론적인 구도에서 해석한다는 점이 다르다. 즉 생명의 영이 단지 자연의 힘이 아니라 우리의 인식 능력을 초월하는 하나님 아버지의 존재양식일 뿐만 아니라 역사적 인물이었던 예수와 본질적으로 동일한 능력이라고 말이다.  
어쨌든지 사도행전은 ‘성령’의 시대를 본격적으로 여는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역시 성령의 세례가 서두에 언급되었다는 것은 타당한 일이다. 앞으로 우리는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사건의 특징이 바로 이 성령의 주도권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초월적이면서도 동시에 역사적인 생명의 힘인 성령을 우리가 사도행전을 읽어가면서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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